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야자와 리에 (문단 편집) === 91년 산타페 열풍 === 사실 미야자와 리에를 당시 한국에서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91년]], '''18살의 나이에 전라 사진집 <[[산타페]]>를 출간한 것'''이었다. 신인급들이 소속사의 요구[* 사실 1980년대에도 여배우들의 [[누드]] 사진집은 많았다. 예를 들어서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카와카미 마미에 같은 경우에는 16살의 나이에 시노야마 키신의 누드를 찍었는데, 소속사를 옮기며 [[아이돌]] 노선을 탈피하면서 소속사의 요구에 부모님의 허락으로 나온 거였다. 특히 아버지는 "배우 생활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2017년 인터뷰로는 "'[[야마구치 모모에]]도 그런 아슬아슬한 사진을 찍었지만 시장에 나오지 않았고, 일단 찍어놓고 안 내보낸 여배우들도 많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모모에도 찍었다'는 말에 용기내서 내보냈다"고...]로 찍거나 전성기를 지난 여배우들이 노후를 삼기 위해 [[누드]] 사진집을 찍던 시기에, 인기 최정상의 여배우가 당대 [[시노야마 기신|최고급의 카메라맨]]과 만나서 누드 사진집을 낸 것이니 당연히 시장에선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크레용 신짱]] 초반부의 에피소드에서도 짱구가 <산타페>를 보물처럼 여기는 장면이 나오고, [[미즈노 슌페이]]도 자신의 책에서 저 <산타페> 열풍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타페>는 리에 본인이 찍고 싶어서 찍은 것도 아니고, 매니저를 겸했던 미야자와 리에의 어머니[* 이 엄마가 보통엄마가 아니다. 긴자 클럽의 호스티스 출신으로 애초에 리에 아빠도 거기서 만났다는 풍문. 후에 딸의 매니저로 나서기 전까지도 호스티스로 일하고있었다고, 엄마가 부추겨서 딸 누드집 찍게한다고 당시 일본에서도 말이 많았던 엄마. 후설하는 파혼도 엄마가 먼저 종용했다는 설이 있다.]가 '''"딸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누드]]로 남겨야 한다"'''라고 주장해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리에는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누드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고 한다. 엄마가 모든 계획을 꾸미고 딸에게는 "대개의 여배우들이 누드 찍는 시점이 느리다. 절정기를 넘어서 촬영은 별로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울 때에 찍어야 한다."고 설득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한국이라면 어림도 없을 이야기일지도.] '유명 사진작가이자 누드 사진가인 [[시노야마 기신]]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한 제안을 미야자와 리에의 어머니가 덥썩 문 것이, 사진집이 나온 계기'라는 것이 현재의 일반적 통설인 듯 하다. 참고로 미성년 시절에 찍기는 했으나 현행 av와 누드를 찍을 수 있는 하한선인 18살을 넘겨서 촬영한 것이기에 합법 출판물이라, 일본의 중고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 가능하다. [[http://bloodsexcult.org/page/obnazhennaja-rie-mijadzava|후방주의]][* 이 당시만 해도 여고생 누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누드도 합법적으로 출판되던 시기였다. 16살 고1 여고생이 연예계에 데뷔하기 위해 누드를 찍거나 12살 잘 나가던 아역배우가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누드를 찍던 시기였다. 지금은 사회문제가 되면서 1999년 법률 개정으로 미성년자의 누드 촬영이 금지되었다.][* 보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 말해 주자면 [[유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미야자와 리에의 헤어누드 사진집 발매 이후 근 10년간 일본에서 여자연예인들의 누드 사진집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 와중에 [[비비안 수]]도 소속사의 은근한 강요에 결국 헤어누드를 찍었는데, 이 당시 나이가 만 18세가 막 안된 때였다. 지금 같았다면 난리가 났을 이야기다. 참고로 <산타페>는 당시 한국에서도 정식출판되어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인기에 누드집이 금기시되던 한국에서도 이례적으로 대형출판사에서 정식 출간하고 신문광고까지 했다. 이후, 한국내에서 누드사진집 열풍이 불어서 가수 유연실[* 유연실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는 표현까지 따라했다.]과 [[민해경]]이 연이어서 누드 사진집을 내기도 하였으나, 답이 없는 완성도에 당시 한국의 보수적 시선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커리어를 완전히 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누드 사진 열풍은 90년대 후반 [[이승희]]로 다시 시작되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중견 여자 연예인들의 여흥 내지는 B급 이하 여배우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특히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파문은 이러한 열풍에 종지부를 찍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